
롱블랙 프렌즈 K
영화보다 연극을 좋아해요. 배우들의 가쁜 숨소리와 송골히 맺힌 땀방울, 바닥을 쿵- 쿵- 울리는 발소리가 좋아서요.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이 생생해서, 저도 극 속 인물이 된 것만 같거든요.
얼마 전엔 그 생생함을 조금 다른 방법으로 느꼈어요. 명동예술극장에서 연극 「오이디푸스」*를 보던 날이었죠. 수신기를 받아들고 한쪽 귀에 이어폰을 꽂자, 무대를 설명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어요.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2026년 9월 24일부터 2026년 10월 18일까지 한다. 음성해설이 있는 접근성 회차는 10월 3일부터 10월 5일까지였다.
“검은색 막 바로 뒤에는 스크린처럼 생긴 커다란 보드판이 있습니다. 공연 중엔 이 보드판에 영상이 상영됩니다. 무대 바닥은 별도의 구조물이나 소품이 없으며 비어 있습니다.”
생경하시죠. 시각장애인의 공연 감상을 돕는 ‘음성해설’이에요. 목소리는 배우들의 대사 사이를 파고들고, 무대 위 소품부터 배우들의 움직임까지 짚어줍니다. 눈을 감아도 어떤 장면인지 그려질 정도죠.

서수연 음성해설작가·한국콘텐츠접근성연구센터 대표
이 해설을 한 사람, 국내 1호 음성해설작가 서수연입니다. 서 작가는 화면과 무대에서 벌어지는 일을 ‘말’로 옮겨요. 누가 어디에 있는지. 어떤 표정과 몸짓을 하는지, 대사와 소리만으로 알기 어려운 정보를 골라 대본을 쓰고, 때론 낭독하죠.
하지만 그의 일이 처음부터 필요성을 널리 인정받았던 건 아닙니다. 2003년 음성해설작가로 데뷔한 뒤, 낯선 시선을 이겨내야 했거든요. 꿋꿋이 일하다 보니 어느새 그가 쓴 작품만 7800여 편. KBS 드라마 「대추나무 사랑걸렸네」부터 넷플릭스 시리즈 「이 사랑 통역 되나요?」까지 그의 포트폴리오입니다.